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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해외

펠레폰네소스 여행

한국은 추석 연휴를 끝내고, 가을의 풍요로움을 느끼고 있을 듯한 주말... 무료함도 달래고 딸 지현이한테도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주말 여행을 떠났다. 짧은 1박 2일의 펠레폰네소스 여행. 학생 시절 수업시간에 많이 들어봐서 참으로 익숙한 펠레폰네소스 반도이지만 그 모습은 아직 전혀 모르는 곳이라 참으로 궁금하기도 했다. 사실 금요일 저녁까지만 해도 그리스의 중부 쪽으로 갈까 펠레폰네소스로 갈까 고민하다가 밤에 결정을 했다. 많이 멀지도 않고 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기에.

토요일 오전 눈뜨자마자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서점에서 책 한권과 지도 하나를 사서 출발했다.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입구격인 코린트는 아테네에서 그리 멀지 않다. 한시간 반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린 고속도로를 타고 코린토스로 향했다. 오늘 둘러보기로 정한 곳은 코린트 운하와 에피다우로스 극장. 그리고 숙소는 나프플리온 항구 근처에 정하기로 했다. 고속도로는 의외로 잘 닦여 있었다. 차도 많지 않아서 토요일의 우리나라 고속도로와는 대조적이었다. 우리나라와 다르다고 느낀 것 몇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제한 속도가 120km인 곳이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우리나라와 같은 휴게소가 없다는 것. 대신 조그만 휴게소가 가끔 있고 곳곳에 조그만 주차공간이 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갓길 운행을 서슴치 않고 한다는 것.

어쨌거나 우린 코린토스까지 무사히 도착했고, 출구에서 조금 떨어진 이시미아(isthmia)로 향했다. 도착은 했는데 그림옆서에서 보던 높고 좁은 운하의 모습과는 좀 달랐다. 잘못 도착한 건가 싶어서 두리번 거리는데 외국인 관광객 한 무리가 오더니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다. 음~ 일단 여기도 관광코스군. 한 5분이나 있었을까... 한국 관광객들도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오는 게 아닌가. 아.. 재수다. 관광객들이 운하 앞에 늘어서고 (그 곳을 차들이 건너려고 기다리고 있는 걸로 봐선 다리가 있어야 할 자리인데, 그 땐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좀 있으니 큰 배가 조그만 견인선에 끌려 운하를 건너갔다. 배가 지나고 나자 기다리고 있던 차들이 시동을 건다. 분명 다리가 있을텐데 보이지 않았다. 배가 지난 후 다리옆의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 다리가 바다 아래서 올라온다... 무슨 마징가 제트도 아니고. 그저 놀라울 뿐이다. 다리를 한 번 건너보고 사진도 찍고 나서 우린 운하를 따라 약간 위쪽으로 올라갔다. 왜냐하면 그림 엽서에서 보던 코린트 운하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결국 그 장소를 찾았는데, 그 곳에서 내려다 보는 운하의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다. 좁은 수로 옆으로 깎아 지른 듯한 절벽 (아마 운하를 만드느라 진짜 깎았을 것이다. --;)이 뻗어 있는 것이 멋있다는 말밖에는... 나의 어휘의 부족함을 느끼며 에피다우로스(Epidavros)로 향했다.


코린트에서 에피다우로스로 가는 길은 국도(?)인데 지도상으로는 가까워 보였지만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렸다. 에피다우로스에 도착하니 주차장에 관광버스들이 몇 대 주차해 있고, 대형 주차장은 거의 비어 있는 상태였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적어서 편안히 구경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에피다우로스 극장으로 올라가 봤다. 일인당 입장료 6유로를 지불하고 안으로 들어 가니, 왼쪽으로는 박물관이 있고, 오른쪽 약간 높은 곳에 에피다우로스 극장이 있다. 먼저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는데 크기도 작을 뿐 만 아니라 유물에 대한 안내가 없어서 뭐가 뭔지 알 수 가 없었다... 박물관 입구에 있는 안내 책자를 사야 하는 건지..쩝. 박물관을 대충 둘러보곤, 극장쪽으로 올라 가 봤다.


돌로 만든 좌석이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져 있고 가운데 부분엔 조그만 원형 돌판이 여기가 가운데입니다 하고 알려 주 듯 박혀 있었다. 몇몇 관광객들이 관람석에 앉아 자유롭게 놀고 있었다. 우리도 높은 쪽 좌석으로 올라가서 좀 앉아 쉬기로 했다. 에피다우로스 극장 가운데에 동전을 떨어뜨리면 앉은 위치에 따라서 그 소리가 다 다르게 들린다고 모 책자에 소개되어 있었는데, 어떤 외국인 아저씨가 동전을 떨어뜨려 본다. 우리가 앉은 자리가 가운데서 꽤나 떨어져 있었는데 그 소리는 참으로 깨끗하게 들렸다. 참 잘 만든 극장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아주 오랜 옛날에. 몇몇 사람들은 무대 중앙에서 장난스럽게 성악 톤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참 한가한 주말 오후 분위기였다. 우린 잠시 앉아 쉰 뒤 무대쪽으로 내려왔는데, 왠 할머니 한분이 무대 중앙에 떡하니 서시더니 노래를 시작하신다. 관광객인 듯 한데 그 노래 실력은 장난이 아니다. 뭐 진짜 가수나 성악가 였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노래가 시작되자 장난치고 놀던 관광객들이 일순간 조용해 졌고, 노래가 끝나자 앵콜이 쇄도 했다. 할머니는 또 못이기는 척 한곡 더 뽑으시고... 참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우린 노래를 다 듣고 간단히 요기한 후, 나프폴리온으로 출발했다.


우리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나프폴리온에 도착했다. 크지는 않지만 조용하지 만도 않은 활기가 넘치는 항구 도시임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린 호텔을 찾아 다녔는데, 빈방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항구 주변에 차를 주차시킨 후, 몇 군데를 방문한 후에 골목길 모퉁이에 있는 호텔 Tirins 에서 40유로짜리 방 하나를 구했다. 우린 짐을 풀고 나니 땅거미가 내려 앉을 시간이라 우린 주변을 잠시 둘러보고 저녁을 사먹기로 했다. 해변을 끼고 산책을 했는데, 바다 건너로 브루치 섬이 아주 가까워 보인다. 산책을 하다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기념품 가게며 타베르나가 즐비해 있다. 우린 지현이 장난감 하나를 사고 타베르나로 들어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메뉴는 ... 음 이름이 기억 안나는데, 삶은 토마토 안에 밥을 넣어 만든 건데 꽤 맛있었다. 저녁 식사중에 할아버지 한 분이 테이블 옆에 와서 기타를 치신다. 우린 음악 감상하는 셈 치고 1유로를 드렸다. 물론, 지현이는 신기한 듯 뚫어져라 쳐다보고... 딸에게 이것 저것 많이 보여 줄 수 있어서 흐뭇하다.

우린 재밌고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고, 빵 한봉지를 사서 (내일 아침 밥), 호텔로 돌아갔다. 토요일 밤이라 그런지 참 늦게까지 동네가 시끄러웠다. 나는 한번 자면 업어가도 모르는 스타일이니 자기 전에 좀 시끄럽다 하고 말았지만 집사람 이야기로는 새벽 3시가 다 되서야 조용해 지더란다. 하긴 여기와서 느낀 거지만, 그리스 사람들 이야기 하는 것을 참 좋아 하는 것 같고 목소리도 참 크다. 그래서 더 소란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우린 오늘 여행을 준비했다.

목표는 나프플리온에 있는 브루치 섬과 팔라미디 요새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미케네와 코린토스 유적지를 보는 것이다. 다소 무리가 있어보이는 빡빡한 일정이라 생각되지만 일단 출발.

우린 먼저 짐을 차에다 실어놓고 항구쪽으로 갔다. 조그만 배가 브루치섬에서 가까운 항구에 정박해 있는데 브루치로 가는 배다. 안내문이나 나눗터 그런 것은 없는데 보면 그 배가 브루치 섬으로 가는 배란 느낌이 팍 온다. 요금은 왕복에 3유로. 우린 배를 타고 브루치 섬으로 갔다. 꽤 가까운 곳이라 5분 정도 만에 도착했다. 브루치 섬은 크기가 작고 섬 전체가 성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멀리서 보면 성이 바다 위에 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우린 섬에 내려 성을 쭉 둘러보고, 다시 돌아 와서 팔라미디 요새로 향했다. 브루치 섬은 작아서 둘러보는데 올래 걸리지 않는다. 가는 길에 나프플리온 관광기차 - 자동차 뒤에 기차모양 객차를 여러개 묶어 놓은 것-를 한번 탔다. 나프플리온을 한 바퀴 돌며 주요 유적을 설명해 주는 데, 20-30분 정도 소요된다. 그런데 안내 방송은 그리스어다. --; 우린 내려서 파라미디 요새로 갔다.

팔라미디 요새. 산 꼭대기에 세워져 있는데 그 곳을 오르기 위해서 999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요새 입구까지는 금방 왔지만 지금부터 올라가는 일이 문제다. 지현이도 데리고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다소 힘들겠구나 싶었다. 일단 요새 입구에 있는 자판기에서 생수 2병을 사서 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힘들었다. 그래도 올라가면서 내려다 보는 나프폴리온의 모습은 참 아름답다. 멀리는 브루치 성이 바다에 떠있고, 앞쪽으로는 빨간 지붕의 마을이, 왼쪽 아래로는 해변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정상에 올라가니 입장료 받는 곳이 있는데, 오늘은 공짜란다. 오~ 재수. 안으로 들어서니 그 동안 봐 왔던 베네치안 요새들과 비슷하다. 요새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는 탁 트인 것이 참 시원한 모습이다. 우린 여기 저기를 둘러보고 하산했다. 내려오는 건 올라가는 것에 비하면 훨씬 수월했다. 우린 근처 타베르나에서 점심을 먹고 미케네로 향했다.




팔라미디에서 미케네까지 50분 정도 걸렸다. 길을 못찾아서 중간에 헤멘 시간까지 포함해서.

미케네.. 영화 '트로이 목마' 이후에 더 잘 알려진 곳이 아닐까 생각된다. 실은 아직 그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이 살았을 거라 생각하니 더욱 기대가 되는 곳이다.

우린 미케네에 도착해서 성터를 둘러보았다. 여기도 오늘 입장료가 무료란다. 일요일에 무료입장이 되는 것은 11월부터 시작되는 걸로 아는데 무슨 일인지 벌써 그런 훌륭한 제도가 시작되었다. 어쨌든 감사하게 생각하고 유적지로 들어갔다. 처음 마주치는 것은 성터의 입구인 사자문. 두 마리 사자가 마주보고 있는 조각이 문 위에 올려져 있는데 지금은 사자 머리부분이 없어지고 두 마리다 몸통부분만 남아 있다. 그나마 우리가 갔을 때는 공사중이라 더 아쉽게 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오른쪽으론 우물같이 생긴 크고 동그란 건축물이 있는데, 우물이 아니라 원형 분묘란다. 왼쪽 언덕으로는 성터가 있는데 지금은 거의 다 무너지고 말 그대로 터만 남아 있다. 우린 유적지를 둘러보고 내려와서 옆에 있는 미케네 박물관으로 갔다. 몇몇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아가멤논의 황금 마스크가 있다... 아가멤논의 마스크는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미케네 박물관에는 아마 모조품을 전시해 놓은 것 아닐까 생각된다.

우린 박물관을 나와 차를 타고 내려가는 길에 아트레우스의 보물창고를 들렀다. 미케네 유적지에서 한 5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서 금방 갈 수 있는 곳이다. 무덤 입구로 들어가면 원추형으로 생긴 톨로스(벌통)가 있고 그 한 쪽 옆으로 납골당이 있다. 무덤인데 왜 보물창고라 부르는지 잘 이해가 안되지만, 톨로스는 아주 정교하게 쌓여졌으며 결코 만들기 쉽지 않은 건축물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여기를 구경하고 나니 오후 6시가 다 되어 간다. 코린토스 유적지를 보려고 했던 계획은 취소할 수밖에 없다. 코린토스는 가까우니 다음에 당일치기로 한번 오자고 약속하고 글리파다의 집으로 향했다.